‘금수저' 환상 너머, 우리 아이에게 진짜 '살아갈 힘'을 물려주려면
한영섭 (금융과 미래)
대한민국 부모들의 자녀 사랑은 유별나다. 내 아이만큼은 부족함 없이, 남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궁극적으로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애틋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 '성공'의 기준은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경제력'으로 수렴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높은 연봉. 이 익숙한 공식은 마치 신성불가침의 교리처럼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부모들은 아이를 이 경주 트랙에 올려놓기 위해 불안과 피로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숨 막히는 경쟁과 압박감 속에서 정작 삶의 기쁨과 의미를 발견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병든 욕망 위에 세워진 '반쪽짜리' 경제 교육
이런 현실 속에서 '어린이 경제 교육'은 종종 길을 잃는다. 용돈 기입장 쓰는 법, 저축하는 습관, 주식 투자 기초… 물론 필요한 지식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외면한 채 기술만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어떻게 돈을 관리할까' 이전에 '왜 돈을 벌고, 어떤 삶을 위해 써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빠진 교육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돈=성공=행복'이라는 사회적 강박이 경제 교육마저 오염시킨다는 점이다. 아이에게 절약을 가르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금수저' 친구를 부러워하고, 더 비싼 학원에 보내야만 뒤처지지 않는다는 불안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모순적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돈의 소중함이 아니라, 돈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냉혹한 현실과 물질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일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증명하듯, 물질주의는 결코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공허함, 불안,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지름길일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주입하고 있는 '반쪽짜리 성공'의 민낯이다.
'부'의 정의를 확장하고 '경제'의 지도를 넓혀라
이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돈 잘 버는 기술'을 넘어,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길을 찾고 행복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는 '진짜 힘'을 키워줘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두 가지 관점의 전환이 절실하다.
첫째, '부(富)'의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 진짜 부자는 단순히 통장 잔고가 두둑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깨끗한 자연과 건강(생태적 부) ▲따뜻한 인간관계와 공동체(사회적 부) ▲지혜와 배움, 마음의 평화(정신적 부) ▲그리고 삶의 도구로서의 돈과 자산(물질적 부) 이 네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완성된다. 우리 아이가 이 '4가지 보물'을 골고루 가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주말에 스마트폰 대신 숲을 찾고(생태), 친구들과 협력하는 기쁨을 배우고(사회), 결과보다 과정을 통해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정신), 돈은 이 모든 것을 위한 수단임을 아는(물질) 아이로 키워야 한다.
둘째, '경제'의 지도를 넓혀야 한다. 경제 활동은 월급봉투와 주식 계좌 안에만 있지 않다. 내 손으로 밥을 짓고(자급), 고장 난 것을 고치고(자급), 이웃과 품앗이를 하고(협동),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고(공유), 세금을 통해 공공 서비스를 누리는(공공) 모든 활동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엄연한 경제다. 아이들이 이 ‘다원적 경제'의 존재를 인식하고 다양한 영역에 참여할 때, 시장 경제의 부침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회복 탄력성과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얻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미래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존 기술'이다.
불안의 대물림을 끊고 '행복한 자립'을 가르치자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당장 눈앞의 성적과 스펙이 중요해 보이는 이 사회에서, 멀리 보고 큰 그림을 그리기란 어렵다. 하지만 부모의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대물림된다. 우리가 '돈 걱정 없는 삶'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돈' 너머의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학원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고 스스로 판단할 기회다. 필요한 것은 더 비싼 선물이 아니라, 결과에 상관없이 지지하고 격려하는 부모의 믿음이다. 필요한 것은 '돈 관리 기술'만이 아니라, 돈을 포함한 세상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설계하고 가꾸어 나갈 '자립의 힘'이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우리 아이에게 불안과 경쟁의 굴레를 그대로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행복하게 자립하는 법'을 알려줄 것인가. 정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부모가 먼저 '돈'의 주인이 되고 '삶'의 주인이 될 때,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배우며 '진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오늘 우리의 용기 있는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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