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뉴딜이야기(열일곱번째) 금융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녹색백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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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면조의 비극적 운명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 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 주는 것이 인생의 보편적 규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 감사절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예기치 않은' 일이 이 칠면조에게 닥친다. 칠면조는 믿의 수정을 강요 받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목전에 둔 2007년, <블랙스완>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나심 탈레브(Nassim Taleb)가 버트란트 러셀에서 빌려와 인용한 대목이다.
추수감사절에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예기치 않은 돌발사건'이 생길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칠면조는, 매일 주인이 먹이를 가져다 주는 일상에 적응될 뿐 아니라, 특히 추수감사절이 가까워짐에 따라 주인이 먹이를 더 친절하게 더 많이 가져다 주는것에 안심하고 그런 일상이 영원하리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추수감사절이라는 한순간의 돌발사건으로 무너진다는 뜻이다. 칠면조 요리가 주인식탁에 올라오는 것으로.
이는 마치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착각하고, 빚 얻어서 너도 나도 주택투기에 뛰어들었지만, 그 정점이었던 2007년 주택거품의 붕괴와 함께 한순간에 신뢰가 붕괴되는 상황을 너무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미래의 불확실성이 가져올 금융이나 경제충격을 설명해주는 개념으로 '블랙스완'을 유행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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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블랙스완'이 아니라 '그린스완'?
탄소의존형 경제가 기후위기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본 편향으로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제가 불평등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나 불평등이 똑같이 경제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앞서 얘기했다.
그런데 결과 측면에서 봐도 이 양자는 경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심각한 불평등이 적어도 중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이제 IMF나 OECD의 공식적인 견해에 가까울 정도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면 또 다른 질문, 심각한 기후위기는 경제안정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 이대목은 비교적 최근에야 다양하게 주목받는 것 같다.
2020년 1월, 중앙은행들의 모임인 국제결제은행(BIS)은 "기후위기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수 있다면서 <그린스완:기후변화시대의 중앙은행과 금융안정성>이라는 흥미있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다른 위험과 달리 비선형적이고 연쇄반응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복잡계적 변화'의 특징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재산파괴나 재난을 동반할 수 있는 물리적 위험(physical risk)과, 무질서하고 혼란스런 탄소감축이 발생시킬 수 있는 전환적 위험(transition risk) 두 가지를 금융시스템에 안겨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결과, 기후변화는 예기치 못한 거대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녹색백조(Green Swan)", 또는 “기후라는 검은백조(climate black swan)” 사건이 될 수 있으며, 다음번의 금융 시스템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중앙은행들은 기후위기를 금융위기 발생의 중요한, 매우 특별한 요인으로 보고 모니터링 방안이나 대처 방안들을 준비하라고 권고한다.
(중앙은행들은 이렇게 꽤 공식적으로 화두를 던진것 같은데, 정부 재무부들에서는 아직 어느 정도 수준의 문제의식이 있는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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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린스완'은 '블랙스완'과 다르다?
그런데 BIS는 '그린스완'이 종래의 '블랙스완'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해서 주목을 끈다.
우선 미래의 기후위기는 금융이나 부동산 시장 이상으로 과거 데이터들을 가지고 예상해낼 수 없다고 판단한다. 기후위기가 갖는 심각한 불확실성 때문에, 이제까지 해오던 것처럼, 역사적 추세로부터 추정된 단순한 "회고적 위험 측정모델(backward-looking)"으로는 미래 시스템 위험에 총체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나리오 기반 분석에 토대를 둔 "전망적 접근법(forward-looking Approaches)"을 새로 개발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기후위기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블랙스완'과 다른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즉, 기후위기로 인한 충격이 극도로 불확실하다고 하지만, 사실 기후위기의 몇가지 위험은 미래에 현실화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발생시점과 충격의 크기가 불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위기가 터지는 것은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과감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의미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그린스완'이 '블랙스완'과 다른점은, 기후재난이 인류 전체의 생존의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에 다른 금융시스템 위기보다 비교할 수 없이 훨씬 위험하다는 점이다.
즉, 기후위기와 관련된 복잡성이 검은백조 사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기후위기가 초래할 복잡한 연쇄반응이나 전파효과는 근본적으로 예측불가능한 환경적, 지리정치학적, 사회경제적 역학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중앙은행만의 준비로 대처가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 두가지 대처로 해결될 수도 없다는데 '그린스완'사건의 특징이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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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린스완', 탄소세(Carbon Tax) 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노벨경제학 수상자 윌리엄 노드하우스를 필두로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효율적 방법으로 탄소세를 제안해왔다. 기후위기를 부정적 외부성으로 보고 탄소세와 같은 피구세를 부과하여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함으로서, 경제주체들이 탄소 효율화를 추구하거나 저탄소 부문으로 자본을 이동시키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려는 전통적인 경제학적 처방이다.
그런데 기후위기가 발생시킬 '그린스완 사건'은 탄소세로 해결하기 어려운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진단한다.
첫째, 탄소세는 회색자산(brown assets)에서 그린자산(green assets)으로 자본을 이동시키는데 충분할 만큼의 조세를 부과하는데 지금까지 실패해왔고, 더 광범위한 시민사회 압력이 없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기후변화는 단지 시장실패의 또 다른 사례로 보면 안되고, 전 세계가 이제까지 경험한 "가장 심각한 시장실패"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 시야까지 감안해서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짧은 시간에 탄소세를 급격히 올려야 하는데, 이런 과감한 대책은 거꾸로 단기적 시야에서 볼 때 금융시장의 급격한 위축을 가져오는 이른바 '기후 민스키 모먼트(climate Minsky Moment)'를 발생시킬 수 있다.
세째, 기후위기는 시장실패의 영역을 넘어서 시민들의 삶의 방식, 장기적인 윤리문제, 공공선을 위한 국제적 협력 등의 면에서 제도적, 사회기술적 시스템 전반의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지속되어 온 제도적, 사회기술적 관성을 탄소세라는 자극만으로 모두 변화시켜낼 수는 없다는 진단이다.
이를테면, 초기국면에서는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기반시설 투자를 진행할 필요도 있는등, 사회적혁신을 포함하여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등 복잡한 정책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전례없는 방식의 국제적 공조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도, 새로운 문화 프레임등이 나와야 하는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싸움은 '다차원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탄소세가 그린뉴딜 정책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아직 모호하다. 미국 그린뉴딜 정책들에서는 탄소세가 아직은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반면 유럽 그린딜은 일정한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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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야의 비극(the tragedy of the horizon)'을 넘어서?
요약하면, 금융과 경제 측면에서 기후위기를 '그린스완'사건으로 규정하고, 중앙은행이나 정부 등 책임있는 경제 통화정책 조직들이 여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아주 중요한 진전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린스완'은 이제까지 재정당국이나 통화당국이 대처해왔던 여타의 위험들과 달리, 극도의 미래 불확실성 뿐만 아니라, '상당한 시간지연(large time lags)' 이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는 점까지 인정을 하고 있다.
시간지연이란, 탄소배출로 인한 기휘위기 악영향이 현실로 나타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길어 현재의 경제 주체들이 해결에 나설 유인이 없다는 점을 지목한다. 대부분의 정책 결정자들의 시야가 자신의 임기 이내로 한정되어 있고, 신용평가회사나 중앙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도 겨우 3~5년 이상을 보지 않는 등, '시야의 비극(the tragedy of the horizon)'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BIS조차도 중앙은행들이 닥쳐올 것이 '확실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예방적 행동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기후위기로 인한 충격이 닥쳤을 때, 금융을 어떻게 안정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가 있는 정도다. 그렇다보니 중앙은행들이 그린스완 사건을 막기 위해서 "최후의 기후 구조자(climate rescuers of last resort)"되어서, 위기가 닥쳤을때 가치가 폭락하는 탄소의존형 자산들이나 기후재난으로 물리적 손실을 입은 자산을 대규모로 매입하자는 정책들을 염두해두고 있는 것 같다. 이 연장선에서 '그린양적완화(green quantitative easing)' 정책도 논의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이 제안들 중에는 그린뉴딜 같은 정책을 제안하고 중앙은행이 여기에 얼마나 지원할건지는 없다. 또한 기휘위기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돕기위한 대규모 지원(완전고용 임무에 대응해서) 같은 논의는 없다. 나아가 위험요인과 위험이 왔을때 대처방안은 많은데, 예방적으로 어떻게 화석기반 경제에서 탈 탄소경제로 이행하도록 도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지 않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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