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십수일 전부터 대중교통은 ‘예매 전쟁’이라고 한다. 하지만 TV와 신문 지면에서 쏟아지는 이런 귀성길 소식이 낯선 이들이 있다. 청년이다. 매스컴에선 취업·연애·결혼 등이 어려운 청년층이 나홀로 추석을 보낸다고 하지만 일부에선 ‘빚’ 때문에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청년층이 존재한다.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대표는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국의 사회 지표를 보면 청년의 고립감이 굉장히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청년들이 부채 문제를 공포스럽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면서 점점 고립감이 심해지고 사회적 관계망도 끊어지는 길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한영섭 대표는 “한 상담자의 경우 아버지가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자녀 신용으로 금융거래를 하다가 더 힘들어졌다. 이 상담자는 아버지는 물론 가족과 관계도 틀어지고 부채도 그대로 떠안게 됐는데 심리적인 분노를 꾹꾹 누르고 있어 안타까웠다”며 “결국 이 친구도 가족과 명절을 보내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영섭(오른쪽)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대표가 '청년 부채 ZERO 캠페인'에서 청년 금융클리닉 상담 홍보를 하고 있다. | ||
일반적으로는 구직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심리적인 압박이 귀성하지 못하는 한 이유가 된다. 일 구해보겠다고 상경했으나 취업은커녕 생활비 압박으로 빚만 졌다는 이야기를 가족·친구에게 꺼내놓기도 쉽지 않다는 부연이다.
“상경한 청년들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엄마론’을 이용한다. 신용등급도 낮고 당장 금융권을 찾아가기에는 벽이 높아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지인 대출인데 지인 대출이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금융권의 대부 업체를 찾게 된다. 하지만 제2, 제3 금융권에서 돈을 빌렸다고 어떻게 쉽게 부모에게 말할 수 있겠나. 비밀이고 들키고 싶지는 않은데 부채는 늘어나는 상황이 된다. 이런 부분이 심리적 부담이 되는 거다.”
청년 부채의 원인은 다양하다. 청년 부채 원인을 학자금으로 한정하게 될 경우 대학 비진학 청년들은 물론 취업 준비 중인 청년층 등 많은 부분이 사각지대로 들어가게 된다. 사실 학자금 대출은 전체 청년 부채의 절반에 못 미친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5일 낸 은행권 대학생 대출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7월말 기준으로 대학생 대출이 2013년에 비해 2086억원(23.8%) 증가했다. 이는 대학생 대출의 ‘전부’로 여겨지는 학자금 대출을 제외한 수치다.
대학생 대출 총액은 1조839억원으로 6만6372건에 달한다. 연체율은 2013년(1.99%)보다 올해 7월말 0.99%로 다소 줄었다. 하지만 연체 전체 건수는 850건에서 1049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민병두 의원실은 대출 건수와 총액이 늘면서 일시적으로 연체율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라고 분석했다. 대학생 대출 연체율은 가계 대출 연체율(0.42%)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청년 부채의 진짜 문제는 대학 졸업 이후”라는 게 한영섭 대표의 분석이다. 한영섭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며 “학자금을 제외한 교육 자금, 생활자금 등을 이유로 대출이 증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은 특히 주거부담율도 높다보니 생활면에서 여유를 찾기가 힘들다.
▲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캠페인 홍보 포스터. | ||
실제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 30세 미만 가구주의 가구당 부채 보유액이 전년대비 11.2%나 급증했다. 30~39세가 7%로 뒤를 이었고 60세 이상이 4.1%로 증가했다. 40~59세 가구주의 경우 부채 보유액은 전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30세 미만 가구주의 부채가 전체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6%로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수입 ‘제로’에 가까운 청년들에게 얹혀 지는 무게감은 전체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청년 부채는 부채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은 100만~200만원에 삶이 무너지기도 한다. 한 청년은 빚 360만원 때문에 상담 센터를 찾아왔다. 기성세대들이야 갚으면 된다는 수준이겠지만 청년층은 액수와 상관없이 심리적 압박감을 크게 느낀다.”
한영섭 대표는 “저임금 시대에 청년층의 소득 수준은 뻔하다”며 “부채를 갚으려고 해도 월세, 생활비 등 생활에 필요한 기본 비용이 많이 들어 갚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청년층 부채가 소득 수준에 비해 소비 수준이 높은 데서 비롯됐을 수 있다. 문제다. 다만 청년 부채 문제는 ‘청년층의 사치성 소비’가 문제라고 손가락질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영섭 대표는 “누구나 소비 생활에서 한차례 실패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하지만 한국 사회는 한번 덫에 걸리면 빠져 나올 수가 없다. 단 한 번의 실수를 인생 전체의 실수, 패배자로 만들어 버리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수 언론은 쉽게 청년 부채는 ‘과소비가 문제’라고 단정하고 금융 교육을 잘 시켜야한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원인-대안이 간결하고 명확하지만 문제를 너무 개인화해버리는 단점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왕따’ 당하지 않고 살기 위한 기본적인 소비들이 있는데 단순히 ‘허리를 졸라매라’고만 한다면 누가 수긍할 수 있겠나.”
한영섭 대표는 세가지의 답을 내놨다. 첫 번째는 개인 차원의 해결책으로 돈이나 부채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당장 상담센터를 찾으라는 것이다. 한영섭 대표는 “상담 센터는 응급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하지만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는 있다. 의지를 가지고 적극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은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같은 민간시설이나 서울시나 경기도, 성남 등에서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 등을 통해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적인 차원의 해결 방법으로 한영섭 대표는 “부채는 분명 상환 능력이 적은 청년에게 과도한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의 약탈적 대출 행태, 소비지향적인 사회 분위기 등의 복합적인 문제”라며 “부채가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채 규모를 공개하는 ‘빚밍 아웃’이나 ‘빚쟁이 유니온’ 등 사람들이 부채에서 개인의 부담을 낮추는 문화를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제도적으로는 부채 탕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개인회생은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영섭 대표는 그 기간을 줄이고 청년들을 빠르게 경제 생활로 편입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빚을 탕감해주면 은행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한영섭 대표는 은행도 회수가 어려운 채권을 남발하지 않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