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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수첩] 부정부패는 전염병이다

경제돌봄 2018. 2. 4. 20:14

[기자수첩] 부정부패는 전염병이다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peopleseye@naver.com

29일 정부가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1190개 기관과 단체 중 946곳에서 4788건의 지적사항이 적발됐다고 한다. 1190개 기관 중에 946곳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이건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나 단체에서 이런 일 만연했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 때의 적폐가 실로 사회 곳곳에 깊고 넓게 퍼져 있었다.


정부의 대응도 강경하다. 부정청탁이나 지시, 서류조작 등 채용비리 혐의가 짙은 109건에 대해서 사정당국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고 255건은 징계 또는 문책을 요구하기로 했다. 수사 의뢰나 징계 대상인 임직원 189명은 이날부터 즉시 업무에서 배재됐다. 앞으로 수사에서 검찰이 이들을 기소할 경우 즉시 퇴출된다고 한다. 수사 의뢰된 8명의 현직기관장은 즉시 해임됐다.


불공정은 20대 청년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이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아왔다. 청년들의 절망은 바로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를 얻지 못했던 그 불공정한 사회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이번 정부의 강경한 조치는 매우 지당하다.


그런데 이 뉴스를 보면서 불현듯 걱정이 하나 생겼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세 가지 중요한 점을 설파했다. 첫째, 부정행위는 나쁜 놈들만 저지르는 게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도덕적인 사람들도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사람은 누구나 부정을 저질러 이익을 보려는 욕구가 있고, 그것을 제어하려는 도덕성도 갖고 있다. 문제는 부정행위의 욕구가 더 강한가, 그것을 제어하려는 도덕성이 더 강한가이다.


둘째,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도덕적 사람들조차 부정행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부정행위를 정당화할 근거를 충분히 확보했을 때다. 특히 부정행위의 결과가 자신이 아니라 남을 돕는 일이라면 사람들은 훨씬 쉽게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예를 들어 뇌물을 받고 그 돈을 자기를 위해 다 쓴다면 보통 사람들은 도덕적 책임감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뇌물을 받고 그 돈을 남을 돕는데 쓴다면 ‘내가 지금 뇌물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야’라는 정당성이 확보돼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셋째, 애리얼리에 따르면 부정부패는 전염된다. 특히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누군가가 부정행위를 저지르면, 그 그룹에 속한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서도 부정행위에 대한 욕구가 싹튼다. ‘저 정도 부정의는 저질러도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에 남이 저지른 부정행위를 따라한다. 그리고 부정행위는 그 그룹에서 관행처럼 굳어진다.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분명한 부정행위인데도 특정 집단은 그 일을 전혀 부정행위처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위공직자 청문회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다운계약서 작성이나 위장전입이 그런 것들이다. 심지어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후보들도 그런 일을 저지른다. 교수나 고위공직자 사회에서 누군가가 비슷한 부정행위를 저지르면 다른 사람들도 그 일을 관행처럼 여기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기자가 우려하는 대목이 이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채용비리로 8명의 기관장이 즉시 해임됐고, 앞으로 수많은 적폐 인사들이 징계를 받아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공기업, 공공기관의 물갈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자리를 채우는 방법은 진실로 공정해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논공행상이라는 것을 벌인다. 그리고 대선 직전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자리를 맡았던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새로 생기는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 물갈이될 공기업, 공공단체 인사에서는 아주 작은 부정도 개입돼서는 안 된다. 알음알음으로 전달되는 인사 청탁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불공정한 인사는 한, 두 개만 공개돼도 정권에 대한 청년들의 실망을 가속화시킬 악재다.

애리얼리의 지적대로 부정행위는 결코 나쁜 놈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심지어 도덕적인 사람들도 부정행위의 유혹에 넘어간다. 인사문제처럼 남을 돕는 일이라면 그 유혹은 더 커진다. “저 사람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좀 도와줘야지”라는 동정심은 절대 금물이다.

또 애리얼리의 지적처럼 부정행위는 전염병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누군가가 동정심에 휩싸여 지인을 ‘꽂아주는’ 행위를 한 번이라도 하면 부정행위는 전염병처럼 확산될지도 모른다. 박근혜 시절의 적폐를 도려내고 새롭게 시작되는 인사다. 이번 인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