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돌보는 금융경제 연구소

기사 - [시인과 경제학자]로버트 브라우닝과 아서 피구-사람과 삶에 대한 관심사 서로 통했다

금융리터러시 2017. 2. 9. 00:27

경제학의 역사는 200여년 정도로 어림된다. 1770년부터 대략 100년은 고전학파로 보고, 이어지는 신고전학파는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유행했다. 이후 30여년간은 케인즈학파가 영향력을 행사한 때였고, 그에 대한 비판으로 프리드먼과 통화주의 경제학자들이 득세했다. 신고전학파는 이미 먹은 고구마에 보태서 하나를 더 먹을 때의 즐거움(가치)을 따지는 ‘한계효용’의 원리를 바탕으로 창시됐다. 이 논의는 로잔의 왈라스, 오스트리아의 멩거, 영국의 제본스에 의해 시작됐지만 스위스의 국력 약화와 나치의 빈 점령으로 인해 제본스의 후계만 살아남았다. 앨프리드 마셜은 한계효용과 밀의 고전파 경제학을 종합해 ‘경제학’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그 열렬한 후계자가 곧 아서 시실 피구(1877~1959)다. ‘모든 경제학설은 마셜의 글 안에 있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케인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신고전학파의 대부로, 영국의 농업 발전, 평화적 산업 확장, 실업 해결 등을 연구했다.

피구의 유년시절과 몇몇 저작은 그가 문학과 시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졌는지를 드러낸다. 케임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에서 시로써 총장상을 받았고, 시와 철학, 윤리학을 통해 개인의 양심과 사회를 공부했다. 경제학자로서 자리를 잡은 1924년에도 ‘시와 철학’이라는 논문을 썼다.

(왼족)로버트 브라우닝 / www.poest.org, (오른쪽)아서 피구 / Ramsey and Musppatt collection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1812~1889)은 피구가 특히 관심을 두었던 문학가였다. 브라우닝은 그림 형제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동시로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워즈워스 등의 시인과 달리 ‘인간’과 ‘영혼’을 주로 노래했다. ‘최고의 선’이라는 시에서 “꿀벌 자루에 한 해 내내 모은 온갖 꽃과 향기”보다, “진주알 속에 감춰져 있는 바다의 빛과 그늘/ 향기와 꽃, 빛과 그늘, 풍요와 놀라움”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우주 안에서 가장 빛나는 진리/ 그것은 한 소녀의 입맞춤”으로 세상의 열쇠로서 사람의 몸짓을 구가했다. “웃을 시간을 떼어 두어라/ 바로 영혼의 노래다// 사랑할 시간을 떼어 두자/ 그대의 인생은 짧기 때문에”라는 시(‘인생’)도 그렇다.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이었던 브라우닝은 유물론 대신 인간 영혼의 힘과 신의 존재를 노래했다. 자연의 풍광을 사랑해 인생의 후반기를 이탈리아에서 보냈지만 그의 시정은 사람의 삶과 영혼을 향해 있었다.

삶을 우선하는 브라우닝의 시와 사상은 피구에게도 전해졌다. 피구가 킹스칼리지의 교원이 되고자 저술한 학위논문은 브라우닝에 관한 것이었다. 이 시인의 렌즈를 통해 사회를 인식하는 시각이 만들어졌음을 고백했다. 그래서 피구는 경제이론의 목표가 사람, 특히 사회적 약자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데 있다고 일갈했다.

경제학자로서 피구의 중요한 저술은 복지 증진을 목표로 하는 후생경제학, 고용이론, 조세이론 등이다. 이들은 사람과 삶에 대한 긍정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기초하고 있다. 피구는 처음으로 재정정책을 자원배분, 소득분배, 경제안정으로 나누었고, 자유방임의 한계를 지적하고 정책을 통해서 사회복지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그 연장선으로 공장의 매연처럼 의도치 않게 거래당사자 이외의 사람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외부효과’의 개념도 마련했다.

재화의 분배를 조정하는 기능으로서 정치와 마찬가지로 그 생산, 분배, 소비를 연구하는 경제학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고 그에 대한 관점이 뚜렷할 필요가 있다. 브라우닝은 사람과 삶을 앞에 두고 시를 지었고 신(神)을 정의했다. “나는 내 영혼을 시험하려 가련다/ 나도 내 갈 길을 안다”며 “하느님이 우박과/ 매서운 번개, 진눈깨비와 숨막히는 눈발을 내리지 않는 한/ 그의 시간 안에 나는 잘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사람, 새 그리고 하느님’). 피구는 이러한 시인의 시를 읽으며 연구했다. 그의 관점이 오늘날 후생경제학이나 환경경제학의 근간이 된 연유를 헤아릴 수 있겠다.

<김연 (시인·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