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빈곤 고착화 막자 ①인터뷰 |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장] 자기 힘으로 해결 못하는 '빚의 늪' 빠져
일자리·주거 등 고민 … 가족간 가계부채 청년층에 전이
경제적 빈곤 외에 정서적 빈곤도 심각 … 고립감 커져
청년들 돈에 지지 않게 '경제적 자존감' 길러줘야
빈곤의 덫에 걸린 청년이 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짐은 빚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빚이 있는 30세 미만 청년가구의 빚 중앙값은 2013년 852만원이었는데 3년 후인 2016년에는 2006만원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빈곤은 빚을, 빚은 빈곤을 부르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셈이다.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센터장(37)은 2012년 이후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주로 빚 때문에 고민하는 저소득층의 상담을 해왔다. 그러다 청년들의 빚 문제도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돼 청년들의 금융 관련 고충을 상담하는 분야에 뛰어들었다.
"청년들은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공적인 기관에 거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죠. 요청하는 순간 루저가 된달까, 낙인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더 겉돌게 되고 , 문제는 해결 안 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는 그런 심각한 일도 생기게 되고요."
■ 청년빈곤이나 청년빚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청년들의 빈곤이 옛날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그런 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어른들 보기엔 니네들이 뭐가 빈곤하다는 거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심각하다. 애초에 교육 때문에 학자금으로 인한 빚을 가지고 사회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 사회로 나온다 해도 높은 실업률에 취업준비생으로 지내는 기간이 길고, 일자리를 얻어도 불안정하고 저소득인 경우가 많고, 주거문제 역시 잘 해결이 안 된다. 자기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벽에 부딪치게 되는 거다. 그러다 결국 생활하기 위해 빚을 얻게 되는데 빚의 질도 나쁘다.
청년이 무슨 신용이 있어서 좋은 조건의 대출을 받을 수 있겠나. 사례 상담해 보면 신용카드 돌려막기 하다가 2금융권, 사채로 가는 속도가 6개월밖에 안 된다. 고금리 대출을 쓰게 되면 매달 수입 지출의 균형이 깨지면서 악순환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
■ 부모가 도우니 괜찮지 않을까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부모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분명히 차이는 있을 거다. 그래서 흙수저 금수저라는 말도 나온 거고. 정책적으로 보면 소위 흙수저들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들은 부모의 덕을 보기는커녕 오히려 부모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이 살기 위해 냈던 빚을 자식들이 떠안게 되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보면 청년빈곤과 청년부채 문제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 등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돼 있다.
부모 때문에 빚을 떠안게 된 청년들과 상담해 보면 처음 한두번으로는 부모 얘기가 나오지도 않는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신뢰가 생겨야 그런 속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다. 청년들의 문제는 가계부채 문제, 노인 문제 등과 다 연결돼 있다.
■ 그래도 여전히 청년빈곤을 심각한 사회적 의제로 올려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객관적 현황을 봐야 한다. 장학재단 지표를 보면 학자금대출이 있고 생활비대출이 있는데 생활비대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금의 청년부채는 생활부채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청년들의 자산은 줄어든다. 자산이 준다는 것은 돈을 못 모은다는 거다. 안 모으기도 하고 못 모으기도 하는 거다. 자산이라고 하면 토지 또는 금융일 텐데 일단 땅이나 집같은 자산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금융자산이라도 형성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되니 결국 빈곤의 길로 향하는 거다.
청년들은 열심히 노력한들 안 되는구나 간파하게 된다. 젊은이들 유행어 중에 'XX비용'이라는 게 있는데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돈은 쓴다는 의미다. 현재를 즐기는 '욜로족'이 쓰는 돈과는 다른 의미다.
■ 청년 빚 대책을 보면 주로 학자금 대출과 관련한 대책이 많은데.
사실 학자금대출은 청년부채의 핵심이 아니다. 학자금 대출은 워낙 장기 저리 대출이기도 하고 원한다면 갚아야 하는 기간을 더 늘릴 수도 있다. 채권추심도 상대적으로 강력하지 않은 편이다. 문제되는 것은 일반 금융대출이다. 청년 입장에서는 생애 최초 채권 추심을 받게 되는데 추심을 안 당해본 사람이 받아보면 얼마나 당황하겠냐. 안 그래도 요즘 청년들이 맷집이 없는데 추심이 오면 충격을 받는다.
■ 센터를 찾아온 청년들에게 주로 어떤 얘기를 해주나.
센터에서는 정서적인 지지감을 일단 주려고 노력한다. '너의 책임만은 아니다'라는 말을 해 준다. 청년들은 빚을 지고, 가난한 상태가 됐을 때 자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 때 심리학적으로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한 거다.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손 잡아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청년들이 자기 문제를 직면할 수 있게 된다.
■ 재무적인 접근보다 정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지금 청년층이 겪는 빈곤은 경제적 빈곤만이 아니다. 정서적 빈곤도 심각하다.청년층의 고립감이 극대화되고 있다. 기댈 곳이 없어지니 아주 자극적인 것이 기댄다. 좋은 예가 일베 아닐까. 정서적 교감이나 사회적 교감이 없는 것 아니냐.
정서적 빈곤과 경제적 빈곤이 결합되면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다. 극단적 선택으로 밀리게 될 수도 있다. 경제적 자존감이라는 표현을 센터에서 쓰곤 하는데 청년들이 돈에 지지 않게끔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돈이 없어도 빛날 수 있어. 가난이 축복은 아니지만 가난해도 빛날 수 있어' 그런 말을 청년들에게 해줘야 한다.
■ 새 정부의 청년정책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민주당뿐 아니라 바른정당 정의당 한국당 등의 청년정책을 다 스크린했다. 그것만 지키면 좋겠다. 정책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필요할 뿐이었다. 다만 청년들의 신뢰나 믿음을 어떻게 회복할 거냐에 대한 고민을 해 줬으면 좋겠다. 청년수당이 거부 됐을 때 청년들의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우호적 생각은 커졌지만 전 정부에 대한 반감은 커졌다. 청년들과 정부의 신뢰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새 정부가 서울시 정책을 많이 벤치마킹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서울시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2013년만 해도 서울시 공무원들도 청년단체들을 민원인 취급하며 위아래 관계로 봤다. 그러나 서서히 바뀌었고 '거버넌스 파트너'로서 시민사회에 존중감을 주고 있다. 현 정부에도 그런 기대를 한다. 청년들을 민원인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이 사회를 좀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함께 가는 동반자로 봐 줬으면 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는 부처별로 성평등 담당자가 있는데 그렇게 하면 모든 정책에 성평등적 관점이 녹아들어갈 수 있다. 새 정부도 꼭 무슨 청년정책을 내놓는 것도 좋겠지만 모든 정책에 청년정책이 흡수될 수 있도록 청년적 관점이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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