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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칼럼 - 한영섭의 금융산책

칼럼, ‘노후 삶 보장 위원회’를 제안하며, 한영섭

금융리터러시 2018. 11. 28. 13:06

‘노후 삶 보장 위원회’를 제안하며

- 소득보장(돈)만으로는 노후의 삶을 보장할 수 없다

한영섭


연금으로 얼마를 받아야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할 수 있을까?

‘100만원? 150만원? 200만원?’

연령과 성별, 처한 경제적 여건, 필요한 욕구 수준에 따라 모두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연금 금액의 산정은 통상 소득대체율로 이야기를 한다. 소득대체율은 일하던 시기의 평균 소득의 일정 수준을 말하는데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39%이다. 250만 원 소득인 사람은 국민연금으로 약 100만 원의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말이다. 65세가 이후 노후 삶에 100만 원이면 괜찮은 수준인가? 아니면 턱없이 부족한가?

2018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 중 하나인 국민연금에 대해 말이 많다. 국민연금은 지금 같은 9% 보험료와 39% 소득대체율 기준을 고수하면 2057년 쌓여 있던 기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기성세대와 미래세대의 사회적 갈등이 잠재된 문제로 사회갈등이 예상된다. 이에 정부에서는 10월 30일 경노사위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를 출범하였고 한창 논의하고 있다.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일지, 보험료를 9%에서 12%로 인상할지 말지 설왕설래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미래세대의 분노를 자아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현세대가 어른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연금특위에서는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기초연금도 함께 포함하여 노후의 ‘소득보장’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퇴직연금까지 고려한다면 다층적 연금체계가 만들어지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노후 삶은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후불안 연금(소득)만의 문제인가?

지금 세대 노후문제는 절대적인 빈곤의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현재 한국은 OECD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율 1위 이다.. 세계에서 가장 노인이 살기 어려운 나라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미래세대를 위한 노후대비는 현세대와 달라야 한다.

연금특위에서 국민연금 등 소득보장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해야 한다.

‘돈만 있으면 인간다운 노후생활이 보장될까?’

우리가 국민연금에 관심 있는 것은 나와 우리 가족, 미래세대의 노후생활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경제생활에 불안을 가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높기 때문에 연금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것이다. 그런데 돈이 많으면 노후 불안 문제는 해결될까? 돈이 많아도 건강하지 않는다면 다 소용없을 것이다. 의료비가 많이 들겠지만, 단순히 의료비용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예방 중심의 의료시스템과 ‘커뮤니티케어’를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증명하기 위한 일(활동)이 없으면 인간답게 살아가기는 어렵다. 또한 주변에 친밀한 관계, 커뮤니티가 없다면 노후의 삶은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노후의 삶은 보다 입체적이고 총체적이다.

소득(경제) 중심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꿈꾸자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2057년까지 39년 약 40년이 남았다. 40년 뒤 미래사회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예측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그려나가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어떤 미래인가? 우리가 원하는 노후는 어떤 생활인가?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 재화는 낮은 비용으로 조달 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적인 미래 석학인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저서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기술 네트워크로 인하여 협력적 공유사회를 통해 비용이 제로에 가깝게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과거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도 기술력의 발달은 인간을 보다 여유롭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보다 현저히 낮은 비용으로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조달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많은 소득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많은 활동공간이 필요할 수 있다. 우리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덜 불안하고 비용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우리가 최소한의 안정적이고 쾌적한 주거공간이 보장된다면 소득이 더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후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커뮤니티와 활력 공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더 많이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소득 창출을 위한 일자리가 아니라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으로써의 ‘일’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유토피아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기술력의 발달로 우리는 과거 어느 때 보다 생산성이 향상된 시대에 살고 있다. 돈벌이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기술이 사회와 인류에 복무할 때 자연과 인류는 살아남지 않을까? 2018년 11월 한국에서 제6차 OECD 세계 포럼이 열리고 있고,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를 포함한 전 세계 석학들이 모여 GDP를 넘어 모두의 Well-being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빵(소득)만 가지고 살 수 없다.


‘노후 삶 보장 위원회’가 필요하다

올 초 영국에서 ‘외로움 담당 장관’이 새롭게 신설되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주목하고 사회적 단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도 사회적 고립이 높아지고 있고, 고독사도 또 하나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기존의 정책과 한 부처에서 해결하기 어렵다. 각 부처가 협력을 해야 비로소 문제를 제대로 정의할 수 있고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노후 삶에 대한 문제도 소득만을 중심으로 논의를 한다면 진짜 노후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을 것이다. 소득보장을 넘어 ‘인간다운 노후 삶’의 보장으로 확대 논의되어야 한다. 사회문제는 이제 과거의 문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는 문제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 모두의 인간다운 노후 생활은 어떤 모습이고 사회는 어떻게 조달하고 보장할 수 있는지 답을 내야 한다. 우리에게는 ‘노후 삶 보장 위원회’가 필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