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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칼럼 - 한영섭의 금융산책

청년독립 - '내가 경함한 독립 이야기'

금융리터러시 2018. 11. 5. 23:11



청년독립생활자 ‘내가 경험한 독립 이야기’

: 독립의 연결되는 것이다


내지갑연구소 소장 한영섭 피터 (2018년 10월)


우리나라에서 청년의 좋은 삶을 위한 생활경제 교육과 상담을 하는 유일한 곳인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사회적협동조합 (예비)사회적기업을 만들고 운영했었습니다. 센터는 서울과 광주에 본사와 지부가 있습니다. 지금은 대구에서도 지부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지트를 통해서 연간 1000명이상의 청년이 교육이나 상담을 듣고 있습니다. 저는 센터를 전국에 최초로 만들고 운영을 하다가 올 초 이사장임기가 끝이나 부설로 내지갑연구소를 만들어 1인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청년 빚 문제 해결을 위한 네크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이 네트워크는 청년의 빚 문제를 사회를 제대로 알라고 문제해결을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일을 해고 있습니다.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로 작업대출이라고 대출을 할 수 없는 사람을 꼬쳐서 문서를 조작해서 대출을 받게 하고 수수료 명목으로 적게는 30% 많게는 모두를 강탈해가는 불법대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을 했습니다. 원래 네이버, 다음, SNS에 ‘작업대출’이라고 검색을 하면 다수가 검색이 되었었는데. 저희가 활동을 해서 그런지 최근에 온라인 상에서 ‘작업대출’은 검색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청년의 금융, 생활경제 문제를 연구하고, 사업하고, 활동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소개가 길었지요.

사실 저는 이제 나이가 39세라 여기어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년이면 40세 마흔이 됩니다. 자칮하면 이제 아재, 꼰대 소리 듣기 참 좋은 나이가 되고 있어서 오늘 이야기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그동안 제가 살면서 독립이라고 경험했던 시기와 그때 느낀 것을 여러분들께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어릴 때 저희 집은 전라도 순천에서 농사짖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산업화 시기에 전라도 순천에서 가족전체가 부산으로 이사를 해서 콩나물 공장을 조그마하게 운영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 아버지 나이가 44세. 그때 어머니 나이가 38세 제가 지금 39인데.. 한 살 밖에 차이가 안나지요. 딸아들 딸아들..제가 막내입니다. 38에 애가 4명 남편이 죽고 없다면 어떨까요? 저는 상상이 안됩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아들, 공고출신에 다가 전문대학 야간 출신입니다. 어떻게 운이 좋아 대기업 정규직에 취직을 했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신파소설 못지 않습니다.

대기업을 성실히 잘 다니는 던 중 저에게는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자기개발 서적에 심취했던 때 였습니다. 책에서는 꿈이 있어야하고 목표가 중요하고 비전이 있어야된다고 일관되게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책에서 시키는 대로 100년 목표를 만들고 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살았습니다. 회사 책상에 그것을 전시(?)했었는데 회사에서 별명이 바른생활, 모범사원 이였습니다. 실제로 입사 1년 만에 표창장도 받았지요. 그때 회사가 천안에 었었는데 일주일에 한번은 꼭 서울에 올라와서 세니마를 듣고 막차를 타고 천안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 저는 누구나 그런 줄 알았습니다. 당시 선배들과 저녁에 술을 먹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선배, 대리, 과장, 부장 등등 그래서 그때 물어보았습니다. 꿈이 있냐고? 삶의 비전이 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다 돌아오는 대답이 뭐 꿈이 있냐? 그냥 막내아들 대학 보낼 때까지 짤리지 않고 다니는 것이지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당시 적지 않은 충격아닌 충격이였습니다. 저는 자기개발 책에서 이야기 하는 거랑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술자리에서 꼭 빠지지 않았던 주제가 돈이 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테크해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나 였습니다. 당시 천안에 불당동이라는 곳이 부동산 가격이 들석 거릴 때였는데. 사야 되나 말아야 되나..지금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여 또 사야하나 말아야하는 것 처럼 말이죠. 아무튼 거의 매일 돈 이야기가 빠진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더 충격이였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면 그래도 살림살이는 걱정 하지 말아야하는 것은 아닌가? 제 자라난 곳은 부산이였습니다. 제가 취업이 빨랐던 터라 부산에 내려가면 친구들에게 술을 쏘고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고민이 더 깊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대기업에 들어간 것도 따지고 보면 저도 돈 때문이였습니다. 저의 적성과 재능보다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것이 거의 유일한 선택기준이였지요. 제가 왜 고민이 깊어졌냐면 대기업에 다니며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제가 만남 대리, 과장, 부장들도 여전히 돈 걱정에 돈돈돈 거리고 있는 모습에 저의 5년뒤 10년 뒤를 그려보니 나도 그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건 왜 그럴 까 궁금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조차도 이런데..그럼 일반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더하지 않을까..이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안에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고민을 좀 적게 했어야하는데....만약에 지금 돌아간다면...절대 퇴사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더 즐겁고 재미있게 회사생활하지 않았을까....아무큰 당시엔 그 고민이 깊어저서 퇴사를 결심하고 입사 4년 4개월 만에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를 하면서 갈등이 많았습니다. 큰 누나와 매형과 싸우기도 하고 등등등 저는 그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못랐던 것 같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말류에도 불구하고 제 맘대로 선택을 했습니다.

저에게 대기업을 그만 두었던 순간이 저에게는 거의 첫 번째 독립된 선택의 순간이였습니다. 2008년 1월 달에 퇴사를 했으니까 올해로 딱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의 삶은 말그대로 제 꼴리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치열하게 살아 왔던 것 같습니다.

천안에서 혼자 활동을 할때 A형 간염에 걸려 혼자 2주간 입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부산의 집에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대기업 다니면서 모아놓은 돈도 보증금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어서 퇴원을 하는 날 돼지 저금통 배를 갈라서 병원비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어떻게 견디었나...너무 미련했구나 싶습니다.

그때는 오기가 있었는지 대기업을 박차고 나왔으니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공하기 전까지 집에 좋지 않은 소식은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미련한 선택을 했나 봅니다. 당시에 저의 독립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독립을 해서 시간이 점점 지날 수록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년채무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카톡이나 전화상담을 하는데요. 나이가 조금 어린 친구들 일 수록 문제 해결을 주변사람 모르게 하고 싶어 했습니다. 문제를 알리면 부모가 화를 낼 것이고 좋지 않는 관계가 더 악화되고 욕먹는 것이 싫어서 그런지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러면 그럴 수록 문제는 더 꼬이고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들게 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거의 전부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최근에 진행한 작업대출 프로젝트를 하면서 피해예방 매뉴얼을 제작을 위해 크라우딩 펀딩을 했습니다. 한달 동안 진행했는데.. 마감 3일 전까지 모금액의 20% 밖에 차지 않았습니다. 마감 하루전에 기적저첨 150% 가까이 달성했습니다. 그건은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만든 성과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스스로 독립된 존재로써 살아기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어야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정리를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독립은 혼자 ‘도꼬다이’ 처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가 사로에게 연결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주도적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을 독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또 다른 독립을 꿈꾸고 있습니다. 내년 물리적인 나이가 40세가 되어 ‘청년’이라 불리는 것이 이제 민망하고 청년이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제가 하고 있는 금융, 부채, 생활경제, 좋은 삶 분야에서 독립된 존재로써 살아가려 합니다. 제가 어떤 독립을 이룰 지 지켜봐주시고 오늘 여기 오신 여러분들도 스스로 독립된 삶을 살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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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 '좋은 삶' 청년독립에 관한 발언문입니다.


뉴노멀 시대에 청년들이 추구하는 독립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독립을 위해 어떠한 것들이 필요한지에 관하여 함께 고민을 나누어 볼 것을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