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1.5℃.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지구 파국을 막기 위해 제시한 마지노선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2100년까지 1.5℃ 이상 상승하면 전 인류가 심각한 위기에, 2℃ 이상 상승하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직면할 거라고 예측했다. 1.5℃도 이하로 지구 온도 상승폭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는 순 제로(net-zero) 배출, 즉 ‘탄소중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2018년 10월 채택한 ‘1.5도 특별보고서’를 통해서다.
2030년은 기후 과학자들이 제시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다. 11년 남았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용어 대신 기후위기(climate crisis), 기후비상(climate emergency),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가 사용되기 시작되었다. 심각성을 반영하는 용어다. 세계 153개국의 과학자 1만1000명은 최근 국제 과학학술지인 ‘바이오사이언스’에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앞에 도달했다”며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시국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기후위기 대응의 기본은 화석연료 사용 최소화와 재생에너지 사용 대폭 증대다. 화석연료 중에서도 온실가스와 미세먼지의 주범인 ‘석탄발전소’를 얼마나 조속히 단계적으로 중단시키고 폐지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기후분석(Climate Analytics)이 2016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1.5℃ 이하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EU 28개국과 OECD 국가는 2030년 안에 석탄발전소를 폐지해야 한다. 또 중국은 2040년, 나머지 국가는 2050년이 마지노선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19 석탄보고서’에 의하면, 2019 글로벌 석탄발전량은 전년 대비 250TWh 이상(2.5% 이상) 하락할 전망이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감소했다. 물론 중국과 인도를 필두로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석탄발전 수요는 당분간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은 대기오염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축소를 핵심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증가 추세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기술발전에 따른 재생에너지 발전원가 하락과 천연가스 가격 하락 그리고 탄소세 도입 확산 등으로 동남아에서 지금 건설 중인 석탄발전소도 얼마나 오래 가동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즉, 좌초자산(stranded assets)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이다. 이는 전 세계의 주요 공적금융기관과 민간금융기관들이 ‘탈석탄 금융’ 급행열차에 속속 탑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탈석탄 금융’은 저탄소 경제 시스템 구축이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일부가 현실화 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CDP(기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의 노하우와 성과에 기반한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와 NGFS(녹색금융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G20의 의뢰로 FSB(금융안정위원회)의 주도로 만들어진 TCFD는 기후위기 시나리오에 따른 재무적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지배구조, 전략, 리스크 관리, 지표 및 목표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NGFS는 금융감독당국이 환경·기후 이슈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 기후 리스크를 금융안정성 모니터링에 반영하라는 권고안을 내놓은 바 있다. TCFD와 NGFS는 고탄소 기업·고탄소 프로젝트 투자가 많은 금융기관은, 기후와 관련한 물리적 리스크와 전환 리스크로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이로 인해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즉 조속한 탈석탄 투자가 금융기관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임을 역설하고 있다는 말이다.
가장 보수적인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 즉, IMF도 TCFD와 NGFS와 기후위기 인식이 같다. IMF는 기후위기가 세계의 경제와 무역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며, 온실가스의 빠른 감축을 위해 10년 안에 1톤당 75달러(한화로 약 8만7000원)의 탄소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처방을 최근 내놓았다. 특히 G20 국가의 재무장관들이 탄소세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소세를 도입하면 석탄화력발전 기업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하며, 자연히 이를 회피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투자는 더욱 늘어난다. 석탄금융은 이 지점에서 위기에 직면한다.
탈석탄 투자를 선언한 금융기관은 현재(2019.12.28.) 파슬 프리 캠페인(fossil free campaign) 등록 기준으로 자산운용규모 12.1조달러에 이르는 1156개 기관이다. 석탄발전에서 탈출한 돈은, 글로벌적 흐름에 비추어 보면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녹색산업에 투자되고 대출될 가능성이 높다. 재생에너지 기술발전은 예상보다 더 빨리 촉진될 수밖에 없으며, 돈이 돌지 않는 석탄발전 산업의 몰락은 예상보다 더욱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석탄금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선진 금융기관들이 위험하다며 버린 석탄발전 프로젝트에 우리 금융기관들은 공적금융·민간금융 가리지 않고 부나방처럼 달려들고 있다. 저탄소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석탄금융은 ‘폭탄돌리기 비즈니스’에 다름 아니다. 머지 않아 터지고야 말 ‘마지막 폭탄’을 우승 트로피처럼 치켜들고 우리 금융기관들은 기뻐하고 있다. 단기적 이익, 그 달콤함 속에 예비된 엄청난 위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알고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탈석탄 선언 금융기관은 현재 5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관여활동으로 2018년 사학연금, 공무원연금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교직원공제회, 행정공제회 그리고 DB손해보험이 합류했다. 이들의 금융자산운용 규모는 2019년 상반기 기준 약 111조4500억원이다. 특히 석탄발전에 6100억원을 투자하고 있는 DB손해보험의 합류는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국민연금, NH농협, 기업은행 등 주류 공적금융은 물론 신한, KB국민, 우리, KEB하나 등 주류 시중은행 그리고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삼성화재, 현대해상 등 주류 보험사들은 여전히 탈석탄을 무시하거나 선언을 주저하고 있다. 특히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석탄금융은 해외에서도 악명 높다. 석탄금융으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과 경제적 피해는 국민의 혈세로 떠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탈석탄 금융은 기후위기와 미세먼지 대응임과 동시에 바로 이를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우리 금융기관들은 현재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손해보험사는 심각한 자연재해를 유발하는 석탄발전에 투자하면서 더욱 더 큰 손해를 유발하고 있다. 생명보험사는 미세먼지의 주범인 석탄발전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고객의 생명을 조기에 단축시키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친환경 녹색금융을 선언하면서도 가장 반환경적인 석탄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공적금융은 ‘사회공헌’이라는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에 열중하면서도 정작 본업인 금융에서는 석탄발전에 거액을 투자함으로써 더 큰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 이 모순을 합리화시키는 전가의 보도는 바로 ‘이익’이다. 이 이익도 장기적 이익이 아닌 단기적 이익이다.
이러한 비즈니스 관행은 배제적 성장(exclusive growth)을 당연시 했고, 그 결과는 지속가능성 위기의 초래다. 세계는 더욱 궁색해 지고 위험해 졌다. 세계는 지금 이 위기의식과 진지한 반성의 토대에서 비즈니스를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의 관점에서 재정립하고 이에 부합하는 관행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자기모순은 하루속히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린와싱(green washing)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
2020년 6월 우리나라에서는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인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정상회의가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한국 개최를 선언함에 따라 이루어진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행사다. 필자는 우리 금융기관들이 ‘탈석탄 금융 선언’으로 이 이벤트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아니, 이 이벤트를 최대한 활용해 책임 있는 금융기관임을 국제사회에 당당히 선언하기를 희망한다. 탈석탄 금융, 기후금융, 녹색금융 그리하여 지속가능금융은 전 지구적인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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